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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제언] 갈라파고스에 갇힌 한국 STO, 법제화 패러다임 바꿔야
관리자
2026.06.02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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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제언] 갈라파고스에 갇힌 한국 STO, 법제화 패러다임 바꿔야

법학박사(Dr. iur) 김성곤
(사)한국블록체인산업진흥협회 상임부회장
한양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
금융위원회가 지난 2026년 5월 15일 민·관 합동 ‘토큰증권 협의체’ 제2차 회의를 개최하며 제도 정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오는 2027년 2월 4일로 예정된 토큰증권 제도화 법(전자증권법 및 자본시장법 개정안) 시행에 발맞추어, 올해 7월 중 하위법령 개정안과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겠다는 구체적인 로드맵도 제시되었다.
이번 협의체에서 논의된 기초자산의 풀링(pooling) 허용이나 장외거래소의 일반투자자 거래한도 완화 등은 시장의 초기 유동성을 확보하고 혁신을 지원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분명 긍정적이다. 투자자 보호와 금융 시스템의 안정을 우선시하는 당국의 방향성 역시 타당하다. 그러나 이러한 세부 규제의 완화 이면에 드러나지 않은 더 본질적인 구조적 한계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현재 국내 토큰증권(ST) 제도화 논의가 기존 전자증권 체계에 지나치게 얽매여, 실질적으로는 '한국형 폐쇄 인프라'가 고착화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토큰증권의 핵심 가치는 단순히 증권을 전산화하거나 비정형 자산을 조각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배당, 이자 지급, 양도 제한, 투자자 자격 검증 등 증권의 발행부터 유통, 권리 행사에 이르는 전 과정을 코드로 자동화하는 ‘스마트계약을 통한 운영 효율성’이 그 본질이다.
그러나 지금 논의되고 있는 제도의 설계 방향은 분산원장 기술을 도입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예탁결제기관 중심의 복층 관리 구조와 허가형(프라이빗) 네트워크, 중앙 집중적 통제 모델을 강하게 전제하고 있다. 권리 변동과 총량 관리의 실질적 권한을 중앙기관이 독점하는 구조 속에서는, -기술만 블록체인일 뿐, 알맹이는 기존 전자증권의 통제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한-, 블록체인 기술 고유의 강점인 자동 집행성과 혁신적 가치가 크게 저해될 수밖에 없다.
반면 해외 주요국들은 특정 기술 아키텍처나 중앙집중형 구조만을 강제하지 않는 유연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와 사뭇 다르다.
독일: 2021년 전자증권법(eWpG)을 통해 중앙예탁기관을 거치지 않는 전자등록증권 구조와 암호증권 등록부 제도를 수용하여, 대형 기관들이 참여하는 디지털 채권 발행을 현실화했다.
유럽연합(EU): 'DLT Pilot Regime'을 통해 분산원장 기반 시장 인프라를 실제 시장에서 시험할 수 있도록 예외적 규제 특례를 부여하며 통제 가능한 범위 내의 실험을 장려하고 있다.
미국: 일률적으로 기술을 제한하기보다 기존 증권법 원리를 적용하되, 대형 자산운용사들이 국채나 머니마켓펀드(MMF) 등의 토큰화 상품을 이더리움과 같은 퍼블릭 블록체인 위에서 직접 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아시아 허브(싱가포르·일본·홍콩): 싱가포르는 'Project Guardian'을 통해 공공형 블록체인 기반의 토큰화 가능성을 검증 중이며, 일본과 홍콩 역시 법 개정과 정책적 지원을 통해 디지털화 시장을 빠르게 키우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기술의 형태를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관계의 명확성이나 투자자 보호 등 기능적 요건만을 규제하는 ‘기능 중심 규제(functional regulation)’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만약 국내 토큰증권 제도가 예탁기관 중심의 폐쇄적 네트워크 구조를 고수한다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치명적인 구조적 한계에 직면할 것이다.
글로벌 상호운용성 결여: 국내에서 발행되는 자산의 글로벌 유동성과의 연계가 차단되고, 해외 투자자나 기관과의 기술적 정합성이 낮아져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고립되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스마트컨트랙트 제약: 권한의 중앙 집중화로 인해 블록체인 기술의 핵심 가치인 자동화와 스마트계약을 통한 운영 효율성을 제대로 실현할 수 없다.
산업 경쟁력 약화: 글로벌 시장이 채권, 펀드, 사모펀드 수익권 등을 중심으로 다양한 자산의 토큰화를 선도하는 동안, 보수적인 규제에 가로막힌 국내 기업과 금융사들은 경쟁력이 뒤쳐지고 우수한 기술 인력마저 해외로 유출될 위험이 크다.
금융당국이 우려하는 초과 발행, 사기성 유통, 시스템 장애 등과 같은 투자자 보호 리스크는 분명 엄격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하지만 규제의 목표와 기술적 수단은 분리되어야 한다. 법이 강제해야 할 것은 특정 네트워크의 구조가 아니라 투자자 보호 장치와 거래기록의 신뢰성 같은 기능적 요건이어야 한다.
결국, 다가오는 7월에 발표될 예정인 가이드라인의 성패는 '기술중립성 원칙'을 얼마나 진정성 있게 담아내느냐에 달려 있다. 특정 기술 표준을 강제하여 시장의 혁신을 저해하는 규제적 독소 조항은 과감히 배제되어야 한다. 퍼블릭 블록체인의 전면 도입이 당장은 어렵다면, 전문투자자 영역이나 안전성이 담보된 특정 자산부터 우선 허용 후 순차적으로 허용 범위를 확대해가며 연착륙을 유도하여야 한다. 아울러 EU처럼 실제 거래와 수탁 구조의 안정성을 사전에 검증할 수 있는 규제 샌드박스를 적극적으로 확대 운영하여야 한다.
토큰증권 제도화는 기존의 전통적인 자본시장 인프라를 미래형으로 재설계하는 중대한 분기점이다. 보호를 명분으로 기술의 혁신까지 저해하는 '갈라파고스적 규제'에 매몰될 경우, 대한민국 자본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확장 중인 토큰화 생태계에서 주도권을 상실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다. 세계와 연결되는 미래 금융 인프라를 구축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만의 '디지털 갈라파고스'를 만들 것인가. 금융당국의 전향적인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