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한계선’ 몰린 K-블록체인, 8년 입법 공백에 인재·자본 짐 싼다
‘생존 한계선’ 몰린 K-블록체인, 8년 입법 공백에 인재·자본 짐 싼다

국내 블록체인 산업이 미비한 제도적 기반과 규제 불확실성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며 존폐의 기로에 섰다. 지난 8년간 이어진 입법 공백 속에 혁신 기업들은 자금난과 소송에 휘말리고 있으며, 핵심 인재와 자본은 규제가 명확한 싱가포르와 미국 등 해외로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블록체인기본법, 왜 지금인가?’ 세미나에서는 산업계와 학계, 법조계 전문가들이 모여 국내 블록체인 생태계의 처참한 현주소를 진단하고 조속한 법 제정을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우영·이주희 의원이 주최한 이번 행사는 고사 위기에 처한 K-블록체인의 마지막 회생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흔들리는 혁신 기업, 규제 샌드박스마저 ‘희망 고문’
한국블록체인산업진흥협회 김성곤 상임이사는 이날 세미나에서 구체적인 기업 실명을 거론하며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국내 토큰증권발행(STO)의 선구자로 불리던 루센트블록이 조각투자 장외거래소 진입에 실패하고, 제도화를 앞둔 펀블이 자금 부족으로 한계에 다다른 현실을 폭로했다. 특히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사업을 추진하던 다윈KS마저 사업 중단 위기 속에 소송전에 휘말린 점은 현행 규제 체계의 모순을 여실히 보여준다.
산업계는 이대로의 상황이 지속된다면 향후 2년 내에 국내 주요 블록체인 기업 대다수가 생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동기 협회 GRC 센터장은 가상자산에 대한 높은 리스크 인식과 회계 및 세무 기준의 불투명성이 국내 비즈니스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싱가포르로 떠나는 기업들, “규제 없어서가 아니라 불명확해서 문제”
해외로 눈을 돌린 기업들의 증언은 더욱 뼈아프다. 싱가포르로 진출한 이큐비알 홀딩스의 이민기 이사는 한국과 싱가포르의 결정적 차이로 규제 명확성을 꼽았다. 싱가포르의 경우 금지 사항과 허용 사항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명확해 경영 불확실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반면, 한국은 사업 가능 여부조차 판단하기 힘든 ‘깜깜이’ 구조라는 것이다.
이효진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겸임교수는 ICO 금지 조치가 레이어1 퍼블릭 블록체인 구축 자체를 가로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결제 수단 및 가상자산 운용 금지가 혁신 서비스 개발을 원천 봉쇄하고 있으며, STO 제도화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기업들의 투자금만 소진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블록체인기본법, 이제는 선택 아닌 생존의 필수 조건
전문가들은 금융 중심의 디지털자산기본법과 별개로 기술 진흥을 목적으로 하는 블록체인기본법이 병행 추진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블록체인은 금융뿐만 아니라 신원 인증(DID), 지역화폐, 전자문서 등 비금융 분야 전반에 걸친 국가적 인프라 기술이기 때문이다.
권오훈 차앤권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기존 법제가 서면 형식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어 분산원장이나 스마트 컨트랙트와 본질적인 마찰을 빚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개인정보보호법, 전자문서법, 민사소송법 등과의 정합성을 맞춘 새로운 법적 틀이 시급하다는 의견이다.
정부 측도 입법 필요성에는 공감하는 모양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박지현 과장은 기업들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실효성 있는 법안 마련의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미 늦었다”는 냉소 섞인 탄식이 나온다. 김종원 한국블록체인산업진흥협회 이사장은 미국과 EU가 블록체인을 국가 전략 자산으로 육성하는 사이 한국은 규제 일변도의 정책으로 디지털 엑소더스를 자초했다고 일갈했다.
결국 K-블록체인이 글로벌 경쟁에서 낙오하지 않기 위해서는 기술의 법적 효력을 보장하고 산업 진흥의 기틀을 닦는 블록체인기본법의 신속한 국회 통과가 최우선 과제다. 입법 공백이 8년을 넘어 10년이 되는 순간, 대한민국 블록체인 영토는 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출처 : 블록체인투데이(https://blockchaintoday.co.kr)